김지선Jisun Kim

소개

시간예술을 전공한 김지선은 사회 시스템과 문화, No man’s land(법, 규범, 국경에 의해 생겨난 물리적 영토 내에서의 다층적 공간, 실재적 장소이나 시스템에 의해 배제된 공간, 온라인 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초창기 완전히 찢긴 여권을 들고 국경을 넘나드는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2011년엔 게릴라 언론 집단 ‘범아시아국제회의’를 출범하고 ‘헐’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선거 유세 현장을 돌며 방송매체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교란시키는 작업을 했다. 2012년 작 웰-스틸링에선 혁명을 모의하는 장치를 개발하여 관객들과 투명인간 그룹이 되어 서울의 상징적인 광장을 점거했으며, 2014년 선보인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 초기 버전을 통해선 안락의자 인류학의 방법으로 온라인 게임과 현실 세계의 기행을 병치시켜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의 변화를 추적했다.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서 세계의 외부를 설정해서 시뮬레이션해보는 새로운 버전의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를 발표했고, 동일 작품으로 2016년 벨기에 쿤스텐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2014년 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No man’s land에 대한 전시를 선보였다.

최근 작업을 통해선 나/세계를 감각하는 문제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2017년에 인간지능의 복제물을 거울삼아 인간에 대해 묻고, 인간중심적으로 설계된 세계와 가치관을 재고하는 Deep Present 발표했고, 2020년에는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텔링으로 사유의 궤적을 추적하며 그 구조를 질문하는 슬픔의 집을 선보였다.

프로젝트
역행의 여행사, 2021
역행의 여행사

역행의 여행사는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지역의 기념물과 문화를 둘러보고 사람을 만나는 패키지 여행의 경험을 웹-장소 투어의 형식으로 옮겨온다. 참여자는 작가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여 개의 웹사이트를 자동으로 이동하며 가이드와 함께 그 안의 데이터와 움직임, 역사를 보는 투어를 한다.

연작으로 선보이게 될 웹-장소 투어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관념의 지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난의 대장정을 담고 있다. 개별의 웹 장소는 인위의 풍경으로 여행자를 맞이하며 시공간에 대한 그들의 감각에 질문하고, 여행자는 디지털 배경 앞에 선 스스로를 투영하여 사유의 사진을 찍는다.

슬픔의 집, 2020
슬픔의 집

The House of Sorrow © Jisun Kim

슬픔의 집은 생각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게임 맵을 설정하고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독특한 감각을 이용해 생각으로 빚어진 공간을 경험하며 실체감을 갖는 감각과 사유 그 자체에 대해 재고한다.

일설에 의하면 부처가 깨닫고 나서 시를 읊었는데 ‘이 슬픔의 집을 지은 자, 더 이상 짓지 않게하리’ 였다고 한다. 작가 김지선은 슬픔의 집을 생각하며, 지워지기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만다라처럼 생각을 담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유무형의 집에 대한 연구를 페루 아마존, 콜롬비아, 미얀마, 인도 등지를 돌며 수년간 진행했다. 그러던 중 ‘민’이라는 인물이 온라인에 건축한 게임 맵을 발견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거대한 슬픔으로써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민의 생각의 무더기를 경험한다.

민은 게임 맵에 동굴을 파고, 사유의 갤러리를 만들고, 디지털 사막을 거닐며 모래알 같은 점들에 그의 기억을 새겼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신의 기억을 반복해서 재경험했다. 그가 이러한 공간을 만들고 기록하고자 했던 생각과 기억은 무엇일까? 김지선은 게임으로 건축된 민의 ‘집’, 생각으로 빚어진 공간을 방문한 첫 번째 플레이어로써 게임 속에서 민의 생각을 추적했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 민의 게임을 완성시켜 ‘슬픔의 집’이란 이름의 게임을 배포한다.

딥 프레젠트, 2018
딥 프레젠트

Deep Present © Euiseok Seong

딥 프레젠트에서 김지선은 오늘날 시스템을 지탱하는 한 축으로 아웃소싱을 본다. 그리고 현재 중요한 감각으로서 작동하는 아웃소싱과 그 정점에 있는 인공지능에 주목한다. 산업의 영역에서 출발한 아웃소싱 전략은 이제 대리전처럼 살상을 위탁하고 위험을 외주화하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끝으로 인간의 고유 영역인 지능마저 위탁하려는 이 시점에 우리가 숙고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

김지선은 인공지능이라는 인간 지능의 복제품을 거울삼아 인간과 사회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작품은 스스로 사유하고 감각하는 것을 위탁하고자 하는 인간과 그것을 위탁받을 존재가 나누는 대화이자 그 이전에 두 정신의 마주 보기이다. 무대에서 이 둘의 생각, 질문, 꿈은 조우하고 충돌하며 반짝이고 사라질 것이다.

아이보리 타워, 2016
아이보리 타워

The Ivory Tower © Jisun Kim

감각의 출구가 봉쇄된 세계에선 분노 역시 갇혀있다. 그것이 자기 내부를 향하면 자살이고 외부를 향하면 무차별적 폭력으로 발현된다. 김지선은 아이보리 타워를 통해 해석되지 않는 순수한 폭력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질문한다.

해 뜰 녘 GTA 5 속 펜트하우스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촬영한 영상은 채팅으로 끊임없이 전해지는 유저들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무력감으로부터 상상되는 시작점, 리셋에 대한 감각을 탐구한다.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 2015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

Climax of the Next Scene ⓒ Asian Arts Theatre(Soo-Hwan Park)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

김지선은 우주라는 상자의 바깥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주과학자들의 사고실험으로부터 착안해 세계라는 상자의 바깥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자본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감각을 아웃소싱 함으로써 세계와의 감각적 관계를 단절시켰다.
 작업은 의도적으로 거세된 감각의 자리로부터 시작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끊임없이 자살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후 김지선은 수개월간 게임을 떠돌며 플레이어들을 만나고 그들을 인터뷰한다. 온라인상의 자기 집에서 히키코모리로 지내는 플레이어, 게임에서 가장 잘 죽는 100가지 방법을 연구하는 플레이어, 세계의 끝이라는 게임 맵의 끝에 가보고자 수개월에 거쳐 마인크래프트 맵을 걷는 플레이어 등의 이야기는 또 다른 게임 맵에 위치한 두 텔레토비의 영상 대화로 증언된다. 세계여행을 하며 아랍의 봄과 런던 폭동을 직접 겪은 여행자는 게임 속 플레이어들의 이야기와 만나 의문을 제기한다.

이 ‘실감’없는 감각으로부터 어떠한 세계의 출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자신을 온통 부정해야 할지도 모를 부정의 가능성이자 잔인한 질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진정 이 게임의 출구를 원하는가?

'No man's land' 시리즈, 2014
'No man's land' 시리즈

No man’s land_RijksakademieOPEN2014 © GJ.vanROOIJ

No man’s land 시리즈는 김지선이 중앙아시아와 중남미에서 행했던 수행적 작업들과 실현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섞인 작업의 스테이먼트들을 모아놓은 작업이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강의 부지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무인지대로 매주 시장이 선다. 김지선은 그곳에서 made in no man’s land의 상품을 생산해 그것을 man’s land로 가져와 유통하는 작업을 비롯해 자신의 물건을 일반 상점에 진열하고 기생 영업한 작업을 전시한다. 일련의 작업에서 혁명과 인권은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 위에서 사유되고(‘사이트 1’, 후렌치 레볼루션), 온화한 폭도들은 공짜 음료 레시피로 스타벅스를 점거한다(‘사이트 3’, 스타♥벅스). 지하철에선 멕시코 원주민의 수제 아이도저(사이버 마약)등이 판매된다(‘사이트 5’, 쇼핑몰).

웰-스틸링, 2012
웰-스틸링

Well-Stealing © Jisun Kim

웰-스틸링

Well-Stealing © Jisun Kim

‘웰-스틸링’은 야간에 2인 이상의 야외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했던 당시의 상황에 기인해 투명 인간이 광장을 점거한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투명인간 후드를 입은 백여 명의 관객들이 서울의 대표적 광장인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을 행진한 퍼포먼스 작업이다.

앞에는 ‘투명 인간’, 뒤에는 ‘못 본 척 해줘’ 라고 야광으로 쓰여진 검정색 후드를 입은 관객들은 익명의 군중으로 광장을 향해 걸으며 당시의 삼엄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못 본 척 해달라는 투명 인간의 무리를 단속하길 주저하는 경찰과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한다.

  • 페스티벌 봄 (2012)
무인지대 여행사, 2012
무인지대 여행사

무인지대 여행사 © 김지선

김지선은 17살 첫 해외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10년간 꾸준히 여행을 이어가다 2010년쯤부터 시공간을 재전유하는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무인지대 여행사(No Man’s Land Travel Agecny)’의 론칭을 준비했다. 타임 슬립 여행, 사이버 스페이스 성지순례, 임의 접속 항공여행 등의 콘텐츠로 이루어진 기획들은 그러나 여행사의 실제 영업을 앞두고 기존 여행시장의 몰이해와 시장성의 문제에 부딪혀 중단되게 된다.

그러던 중 ‘무인지대 여행사’에 투자를 하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났고 상품은 더 정교하게 구성되어 실제 여행사업의 론칭과 여행 프로그램을 알리는 시연회를 갖게 된다.

  • 백남준 아트센터 (2012)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퍼포먼스, 2011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 김지선

‘범아시아국제회의(Pan-Asiatic International Conference)’는 서울 본부를 거점으로 뭄바이와 방콕을 거쳐 아시아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기자 협회다. 이 협회의 창설자이자 유일한 회원인 김지선은 자신, 아니 PAIC가 발행한 기자증을 지닌 채 한국에서 웹과 기자회견, 컨퍼런스를 중심으로 취재 활동을 벌인다.

본 프로젝트의 극장 버전인 공연에서 김지선은 ‘범아시아국제회의’의 기자를 뽑는 면접을 진행하고 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저널리즘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그 현장은 실시간으로 극장으로 송출된다.

견고한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는 경계의 지점들, 그곳에서 일어나는 비합법적이지만 불법이 아닌 모호한 위치 등을 재발굴하는 이 수행적 작업에서 김지선은 뉴스, 광고 등의 미디어 시스템과 개인적 경험 간의 간극을 오가며 오늘날 유통되는 장소와 소통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자본주의 체제의 견고함 속에서 드러나는 균열의 장소들. 누가 그곳을 드러내고,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페스티벌 봄 (2011)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영상, 2011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 김지선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스탁스 3. 이주민 이주 © 김지선

김지선은 ‘헐’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6.2 지방선거 여당의 유세 현장에 나타나 정치인을 쫓으며 배경에 유령 같은 말풍선 역할을 한다. 그 모습은 유세현장에 있던 각종 언론 매체와 일반 시민들의 블로그를 통해 인터넷에 유포되었는데 김지선은 이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이미지가 담긴 영상과 기사를 실제 뉴스인 것처럼 유명 포털 사이트에 올려놓고 미디어를 조작 생산했다.

같은 해 서울에서 치뤄진 G20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생방송 뉴스를 전하는 앵커 뒤에 선 작가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송출했다.

‘헐’이라는 다중 발생적인 단어를 발화하지 않고 입음으로써 행위는 정치적이지 않은 지점에서 시스템을 교란하고 놀이의 장을 마련한다.